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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Joy - 우리에게 온 작은 땅콩 Mitchell

by 올쓰 2018. 4. 30.


29주 쯤 미드와이프와 미팅을 하는데 배가 원레 주수보다 훨씬 커서 체크도 할 겸 울트라사운드를 다시 하자고 했다.

안그래도 엄마가 자꾸 배가 크다고 한것도 있고 불안불안 했는데, 혹시 조이가 너무 큰게 아닐까 걱정이 됬다. 울트라사운드를 하는데 테크니션이 아기 몸무게를 말해줬는데 잘못 들은줄 알았다. 3 파운드도 안된다니!

그리고는 바로 다음날 미드와이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기가 너무 작아서, Jim Pattison Maternity Clinic 에서 전문의에게 다시 한번 울트라사운드를 받아보자고 했다. 이때부터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머리둘레는 많이 작지 않은데 배둘래와 허벅지가 하위 10%로 정도 된다고 했다. 원인으로는 두가지로 좁힐 수 있는데 1) 유전적 요인 이거나 2) 태반이 제 기능을 못해서 아기에게 영양공급을 잘 못해주거나 란다.
아무래도 남편이나 나나 동양사람이다보니 아이가 작을 수 있는데 마손이가 보통으로 태어났다보니 의사들은 정확히 진단 내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안전하게 37주에 유도분만을 진행하자고 했다.

당시 나는 너무나도 당혹 스러웠다.
첫째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자연분만을 하기를 바랬는데 유도분만이라니.

당시 조이는 아직 돌아서지도 않은 상태여서 제왕절개가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조이가 돌아선다면 그래도 자연분만을 시도 할 수는 있었는데, 촉진제를 맞기 시작하면 에피듀럴은 물론이고 그러다 제왕절게 하게 되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의 생각).

몇가지 책들과 블로그를 읽으면서 출산경험담을 정리 한 결과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한국은 작은 아기를 선호 한다. (작게 나아서 크게 키우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하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꼭 40주를 채우지 않아도 37-38 주 에 유도분만을 시도 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유도분만이지, 어쨌든 산모의 몸이 진통을 시작하는게 아니라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다 보니 당연히 아기가 안 내려 올 수도 있다. 거기다가 옥시톡신이라는 촉진제를 맞으면 진통은 시작되더라도, 몸에서 진통이 시작됨과 동시 뇌에서 내보내는 엔돌핀은 생성이 되지 않아 그만큼 진통은 더 고통 스러울수 있다. 그러다 보니 촉진제를 쓰는 대부분의 산모들은 어쩔수 없이 에피듀럴을 쓰게되는 것이다. 내가 에피듀럴을 피하고자 하는 이유는, 일단 에피듀럴을 맞으면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푸쉬를 제대로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고, 설상 잘 하더라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마구 푸쉬하다가 회음부가 더 심하게 찢어질 확률이 높을 것 같기 때문이였다. 거기다가 더이상 자궁문이 열리지 않는데 양수는 이미 터진지 오래고.. 이런 상황에서 산모가 힘들거나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당연히 제왕절개로 아기를 꺼내야 한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사들은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것이 좀더 의료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자연분만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진통이 정말 긴 사람, 짧은 사람 천차만별) 그리고 푸쉬만 몇 시간 했다는 산모들도 있기때문에 체력적으로도 훨씬 큰 노동이 필요로 하기때문에 궂이 의사들이 자연분만을 강요 할 인센티브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나는 유도분만을 하고 싶지 않았다.

36주까지도 조이는 초음파 상으로 자라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하위 10% 에서 머물고 있었고, 결국 37주 0일에 병원으로 가서 유도분만하기로 날을 잡았다. 다행히도 그때은 조이가 돌아서서 제왕절개가 아닌 자연분만을 시도 할 수 있었다.

촉진제도 여러가지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도 당직 의사는 내가 미드와이프와 함께 온 것을 알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장 내추럴(?) 한 방법을 먼져 시도했다. 자궁입구에 풍선을 삽입해서 서서히 자궁문을 벌려주는 방법인데, 자궁문이 3센치 정도 열리면 풍선이 저절로 빠진다. 실제로 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5-6시간만에 자궁이 열리고, 약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초산이 아니고 첫째도 자연분만한 경험이 있다보니, 시동만 걸어주면 몸이 반응 할 확률이 높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옥시톡신을 투여할까 말까 간호사와 의사가 몇번을 상의 하는 동안에도 나의 진통의 강도와 간격은 많이 세졌는데 마지막에 체크했을때가 5센치. 강도에 비해 열린게 너무 미미해 좌절했을정도... 그치만 의사가 한시간만 거 지켜보자고 했던게 신의 한수였다. 그 때부터 진통에 가속이 붙어 정말 아파서 눈물도 안나오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 ㅠㅠ

아기 모니터링때문에 샤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남편만 붙잡고 서서 참아내야 했는데, 먹은것도 부실한대다가 너무 진통이 심해서 토할뻔 한걸 몇 번이나 참았다. 첫째때는 진통도 짧은 편이였는데, 이번엔 진통이 너무 길어 진이 빠진 나머지 힘을 참는것도, 주는것도 너무 힘들었다. 정말 당직 선생님이 다른 산모의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지금 당장 제왕절개 해달라고 소리쳤을뻔했다. 마지막 8센치에서 자궁문이 더 안열리자, 미드와이프와 간호사들이 홀드를 해야하는지 푸쉬를 해야하는지 의논을 하는 그 찰나, 나는 정말 세상이 노랗게 뱅뱅 돌고 있었다. 뭔가 결정을 내려 달란 말야! (이 와중에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서 조이 머리에 심장박동수를 모니터 할 수 있는 기계를 설치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난 몇번의 내진 비스무리한것을 당하고.. 이것도 남편이 얘기해준 사실이다. 난 눈 딱 감고 참아내고 있느라 정신도 없었음)

그러다 결국 진통으로 아기가 정말 가까이 아래쪽으로 내려왔다고 판단한 미드와이프가 가진 힘을 다해 푸쉬 하라고 했다. 난 지금 이 순간 해내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라는 생각으로 푸쉬했다. 한 순간 이었다. 한번의 푸쉬로 조이는 내 가슴위로 얹어졌고, 그 따뜻한, 하얗게 뒤덮였던 아주 작은 우리 땅콩은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고통스러워서 눈물도 안 나온다는 말은 사실 이였다. 몇번이나 포기 하려도 했었다. 남편이 꼭 잡은 내 손이 진통만큼 아픈 적도 있었다.
첫째때는 낳고서 얼떨떨 하기도 하고, 감동보다는 아픔이 컸는데 둘째때는 막상 낳고 나니 감동때문에 울뻔 ㅠㅠ 또 서러워서 울뻔 했다 ㅠㅠ

작은것 빼고는 아기는 건강했다.
아, 황달이 심해져서 점점 깨워서 젖먹이는게 힘들어 지긴 했지만, 체온유지도 그리고 혈당유지도 모두 오케이 받아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 옆에서 온전히 이틀을 보내고 퇴원했다. 처음 해본게 있어서 그런지, 남편과 나는 꽤 여유로웠고, 잘 울지도 않았지만 우리 땅콩이 울어도 우린 당황하지 않았다. 베테랑은 아니더라도 일단 초보딱지는 띤듯 싶다.



내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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