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log

오늘 첫 교리시간이였는데 - 힘들고 지친다.

by 올쓰 2011. 10. 17.


첫 교리시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교리를 하지 못했다.
교안도 2주전에 준비해서 수정도 하고 계획도 다 짜놓고 있었는데 말이다.

미사가 1시 45분쯤 끝나고 부리나케 오피스에 갔더니 교리실 키가 없었다.
교리실에 가니 아무도 없고 문도 잠겨있어서 다시 오피스가서 헤메다가 베드로 형제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서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마침 어디선가 나타나신 어른 한분이 키를 가지고 오시면서 '그 교리방은 우리 기타해야하는데, 2시부터' 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얼굴이 붉어짐을 느끼고 진정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반은 성가대도 아니고, 그리고 성가대라고 하더라도 사실 주일학교 교리반이 우선이어야 하는게 맞는데 - 내가 교리교사이지 않더라도- 이건 무슨 상황인지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말 끝마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예전부터 이방을 썼고'  라고 하시는데, 내가 아는한 적어도 써리로 성당이 옮겨지고 난 후에는 무조건 12시 미사후에는 교리반을 했었는데. 아니, 그것도 아니라 불과 올해, 작년, 제작년, 그전 만해도 항상 주일학교를 하고 교사미팅을 하던 그 방이 언제부터 기타반이 사용했던 방이 되었는지 가만히 듣고 보니 기가막혔다.

'이 방은 저희가 항상 미사후에 주일학교 교리를 했었는데요' 라고 하자마자 다시 그 어른께서는 그쪽에서 예전부터 썼다고 하시니 그냥 입을 꾹 다물수밖에. 키를 안주시고 계시다가 '일단 저희 너무 늦어서 교리 먼져 시작해야 할껏 같아요, 죄송합니다' 하자 그 분께서는 키를 내어주시며 '그럼 2시반까지는 꼭 끝내줘요~ ' 하셨다.

교리반에 들어와 진정하고 책상옮겨서 아이들 앉고 출석을 부르니 2시 5분. 

내가 너무 어이도 없고 화가 나서 그런지 오늘따라 무척 말을 버벅대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를 반복하고.
결국 아이들 출석부르고, 간식 나누어먹고, 이름표 만들고 교리책만 나누어 준채 2시30분에 나왔는데 그 어른분께서 들어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 아, 일찍 끝내주어서 고마워요. 서로 그렇게 양보하면 되는거지. 그런데 보니까 옆에 도서실이 비어있던데 그쪽에서 교리를 하면 안되나?' 라고 하신다.

순간 양보라는 단어의 뜻을 과연 이분은 알고 말씀 하시는 것인지 잠시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서 하는것도 아니였는데 이걸 양보라고 하신건지, 본인이 그래도 2시반까지는 기다려 주었으니 그것이 양보라고 하신건지. 

한참 화가나 있는데 동료 교사가 하는 말이 보좌신부님께서 그 부분은 기획분과에 건의를 해야한다고 하셨단다. 휴.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다. 이렇게 까지 내가 교리교사 하면서 아이들 가르쳐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거기다 집에오니 다음주에는 프렙 미팅이 2시부터 있어서 아이들이 다 빠질꺼라고 어떡하냐는 동료 교사가 문자를 보낸다. 그래, 물론 프랩도 중요하지만, 아무 상의없이 교리시간과 겹치게 미팅시간을 잡으시는 일이 이렇게 빈번하니 그냥 힘이 쭉쭉 빠진다.

다음주도 변함없이 그 어른분은 2시부터 기타를 하셔야 한다고 기다리실꺼고, 기다리시는 동안 기타배우시는 어른들은 아무 생각없이 교리실 밖깥에서 신나게 연주하며 마음을 달래실 테고. 

나는 시간에 쫒겨 교리를 하는지 못하는지 아니, 시끄러운 기타소리와 함께 아이들과 성서만 읽고 끝나는 교리반이 되테고. 
그래도 주님의 뜻 이라고 따라야 하는지.

힘들고 지치고, 다들 무능력자들.
정작 도움이 필요할땐 직책이 무색할 만큼 자신의 입지만 처신하느라 비굴한 우리들.